기사단장 죽이기

우리동네의 지하철 역에는 칙치폭폭 도서관이라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 자체의 책은 적지만, 부천 전체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수 있고 반납도 가능해서 무척 좋은 공간이다.

한번 들렸던 이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이야기를 발견해 읽기 시작했었다. 예전 그 유명한 상실의 시대 이후 몇권의 장편을 보긴 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랑 잘 맞는 작가라고는 할수가 없었다. 어느순간에 현실과 비현실을 넘어서면서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유명한 작가고 신간만 발매하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한때는 인스타용 소설로도 많이 쓰였던 작가라 그나마 최신간인 이 책은 어떨까 하고 한번 읽어봤다.(신간이래도 2016년 책이다)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이혼통보를 받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집을 떠나 방황을 시작하는걸로 소설은 시작한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아는 사람에게 거주할 곳을 제공받고, 시골의 큰 집에서 혼자 살게 되는데,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장르소설은 아니고 순문학에 가깝다고 볼수 있는데, 어찌보면 이야기의 맥락이나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고 볼수 있다. 주로 내가 많이 읽는 장르소설처럼 이야기의 구조가 탄탄하거나 이야기가 있는 소설이 아니라서 예전에는 그렇게 즐겁게 읽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변한건지 아니면 이 소설이 달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꽤 몰입해서 읽을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는걸까 라고 하다가 보니 결국은 또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그런 부분에 크게 저어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보고나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이데아는 무엇이고 기사단장은 무엇인지. 메타포와 이중메타포는 뭔소린지. 멘시키의 본성은 무엇이고 아키가와 마리에가 숨었을때 있었던 사람은 무엇이었는지. 구덩이는 무엇이고 이세계는 무엇인지 등등.

그런데 이 소설은 장르적설정물이나 현실이 아닌 비현실을 기반으로 한 은유에 가까운 이야기일 수 밖에 때문에, 모든게 다 해석의 영역이 되버린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게 무엇인지 라고 정의하는거 자체게 큰 의미가 없는거 같다. 반대로 이 하루키 라는 작가는 독자나 평론가에게 그런 짐을 넘겨버리고 웃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유의 영역은 존재하지만, 그걸 또 그렇게 깊게 들어갈 생각은 들게 하지 않는. 하지만 책을 읽는동안은 꽤 즐거웠던 책이였다. 책 전체 부분에서 주인공이 방황하는 초반부가 꽤 인상깊었는데 아마 그 방황에 동질감이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 나서 보니 주인공은 30대였다. 묘하게 이혼하고 혼자 사는 남성이고 완성된 어른 같은 느낌이라 40대 정도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이런 나이감각의 차이는 일본과 한국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이후로 하루키 책들을 좀 더 읽어볼까 하고 있다.